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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더블유 모먼츠] 고객을 나의 매력에 반하게 하라.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모닝턴 페닌슐라에는 와인에 진심이 생산자들이 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토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이 만든 와인은 고객들이 사랑에 빠질 매력이 넘친다. 오주석의 더블유 모먼츠 (W moments)와 함께 5 곳의 와이너리를 만나보자.
[오주석의 더블유 모먼츠] 고객을 나의 매력에 반하게 하라.
오주석의 더블유 모먼츠

갑진년 청룡의 해가 밝은지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민족의 명절 설이 찾아왔다. 장바구니 물가가 올라서 풍성하지 않은 명절이 될 것이로 예측하는 뉴스가 많다. 하지만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또는 혼자 버킷 리스트에 넣어 둔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남반구의 여름 속으로 가는 와인 애호가가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안녕, 나는 폴이라고 해. 반가워! 오늘 모닝턴 페닌슐라의 아름다운 와이너리 소풍을 안내할 가이드야.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멀었겠지만, 한 시간이면 우리는 첫 와이너리에 도착할 거야.” 자, 그럼 준비됐지?.

아침 8시,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한 가이드 폴과 만났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휴가를 온 두 쌍의 부부와 우리를 포함한 총 6명의 관광객은 폴의 소개로 인사를 나눴다. 날씨는 완연한 봄기운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폴이 운전하는 밴에는 아직 서로 서먹한 냉기가 자리했다. 모닝턴 페닌슐라의 레드힐로 가는 동안 당일 여정과 지역에 관해 설명하는 폴의 목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할 즈음 첫 목적지에 도착했다. 폴은 운전석 옆에 둔 제임스 할리데이 2023을 확인하며 우리를 셀러도어 앞으로 안내했다. 와인 애호가들이 5~6곳을 당일 투어로 다니기에는 상당한 애정과 체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남반구의 봄이 따뜻함을 넘어서 여름 같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모닝턴 페닌슐라가 호주의 서늘한 기후에서 생산된 와인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별이 된 이유를 발견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맨 처음 방문한 와이너리는 야비 레이크 바인 야드. Yabby Lake Vineyard

https://www.instagram.com/yabby_lake/

​ 주차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이 “유쾌”한 와이너리를 잊을 수 없다. 9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우리를 맞이한 츤데레한 청년의 시음 와인 설명은 딱딱했다. 하지만, 로제 스파클링와인을 잔에 받은 일행들이 포도밭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 일제히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가이드인 폴 역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레스를 갖춰 입은 일행들이 몰려왔다. 새로운 와인을 받는 동안 주변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하고 신나는 웃음소리는 우리의 코와 입을 통해 들어온 와인의 향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되었고 아 좋다는 탄성은 각 소절의 마침표 같았다. 시음 와인이 늘어갈수록, 청년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이어서 피노 그리, 샤르도네, 그리고 싱글 빈 야드의 피노 누아를 마시는 순간 머리 속에는 계산이 시작되었다. 이 와인을 지금 사야 하나? 여정이 끝날 때 까지 잘 가져갈 수 있을까? 히트 코트의 쉬라즈까지 시음한 후 폴이 나직하게 물었다. 혹시 와인 살 거야? 난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이 곳은 되돌아올 때는 들를 수 없는 곳이라 폴은 재차 강조했고, 우리는 그래도 괜찮다며 야비 레이크를 떠났다. 하지만 지금 가장 기억나는 와인은 야비 레이크 싱글 빈 야드의 블록 1의 피노 누아다. 샀어야 했다. 호주 와인과 관련한 의미 있는 상인 지미 왓슨 트로피가 있다. 지난 52년의 역사에서 피노 누아 품종으로는 유일하게 2013년 야비 레이크의 피노 누아가 상을 받았다. 현재 “레드 클로우” 라는 브랜드로 호주의 젊은 고객들까지 유혹한다. 이 곳은 피크닉이 생각나는 “유쾌”한 곳이다.

다음으로 방문한 와이너리는 크리텐덴 에스테이트. Crittenden Estate

https://www.instagram.com/crittendenwines

야비 레이크를 떠난 나는 크리텐덴 주차장에서부터 마음이 편안했다. 눈 앞에 보이는 초록빛 담장과 사이프러스 나무가 펼쳐진 길을 지나 테이스팅 룸으로 걸어가며 마치 토스카나에 온 느낌이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 시음이 진행되었다. 호스트인 롤로 크리텐덴은 나의 예상을 알고 있다는 듯 이탈리안 토착 품종들을 이용해서 만든 와인을 소개했다. 피노 그리, 산지오베제로 만든 와인이 제공될 즈음 점식을 즐기러 손님들이 점점 몰려왔다. 모닝턴 페닌슐라의 레전드인 게리와 마가렛의 가업을 이어받아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는 크리텐덴은 피에몬테와 알바로 트러플 여행을 갈 계획인 롤로 크리텐덴은 이탈리아를 좋아한다고 했다.

크리텐덴 에스테이트 역시 1982년부터 모닝턴 페닌슐라에서 와인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게리와 마가렛은 단지 와인을 재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관광산업을 위해 공헌했다고 한다. 2020년 세상을 떠난 마가렛은 특히 지역의 관광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다. ‘피노키오’ 라는 서브 브랜드를 통해 새로운 고객들과 만나고 있는 크리텐덴 에스테이트는 모닝턴 페닌슐라에서 이탈리아를 조우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다음 와이너리는 퀼리 바인 야드. Quealy Vineyard 

https://www.instagram.com/quealywines/

퀄리 바인 야드는 친환경 와인 생산으로 유명하다. 동시에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독특한 품종을 시도하는 와이너리다. 입구에는 와이너리에서 사용한 깨진 대형 암포라가 있다. 녹슨 철에 그려진 말과 개구리는 물론이고 금방이라도 코알라가 나타날 것만 같은 높이 솟은 유칼립투스 나무가 사람을 반긴다. 인위적이지 않은 이 곳은 모닝턴 페닌슐라에서 가장 먼저 피노 그리를 재배하고 성공적으로 확산시켰다. 리슬링을 비롯한 호주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품종과 다양한 블렌딩을 시도한다. 산지오베제, 쉬라즈, 그리고 피노누아 블렌딩은 물론이고 스킨 컨택으로 만든 푸리울라노까지. 이곳 테이스팅 룸과 야외 공간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친구들과 왔으면 하는 생각이 와이너리를 떠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곳이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퀄리 바인 야드는 “즐거운 도전”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배가 고팠다. 입에서는 침이 고이고 와인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허기를 채워야 했다. 

일행의 점심 장소에 도착했다. 메릭스 스토어. Merricks General Store 

https://www.instagram.com/merricksstore/

메릭스 스토어는 모닝턴 페닌슐라 와인 산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에 조이너 가족이 지은 일반 상점인데 우체국으로, 가게로, 지역 커뮤니티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초창기에는 여행자와 서퍼들이 파이나 칩, 핫 초코릿, 밀크 셰이크를 먹으러 들르는 인기 장소였다. 1997년에는 잠시 식당과 고급 식품 팬트리로 운영되었으나 2000년대 초반까지 쇠락했다. 그사이에 새로운 소유주들이 건물을 복원하고 확장하여 카페, 편의점, 셀러도어로 문을 열었다. 2008년 봄에 마이어와 베일리우 가족이 상점을 구입해서 이곳을 카페와 식당 이벤트 공간과 셀러 도어로 다시 오픈했다. 많은 관광객들의 허기진 배와 갈증을 해결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와인들을 모아서 판매하며 모인턴 페닌슐라를 홍보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걸어서 스토니에 와인스로 이동했다. Stonier Wines 

https://www.instagram.com/stonierwines/

 점심을 잘 먹고 푸근해진 마음이 다시 바짝 긴장했다. 시음 와인은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 각 4종, 밭과 빈티지를 고려한 시음은 미세한 차이점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지만 높은 산미와 어린 와인이 주는 거친 느낌으로 다소 힘들었다. 시간과 자본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는 와인들이었다. 음식과 함께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는 곳이다. 그런데도 이곳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모닝턴 페닌슐라에서 전통적인 부르고뉴 스타일을 지향하는 와이너리의 비전이 앞으로 어떻게 숙성될지 기대와 희망이 공존하는 저장고를 둘러보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존경은 경쟁력을 만드는 근원이다. 어쩌면 세계의 많은 와인 생산지의 창조적인 생산자들이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에 대해 부르고뉴가 세운 기준을 향한 도전은 당연하다. 게다가 모닝턴 페닌슐라는 충분한 여건을 갖춘 곳일지도 모른다. 고집스럽게, 신중하게 와인을 다루고 와인에 투자하는 스토니에 와인은 아직 한국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텐 미니츠 바이 트랙터 와이너리다. Ten Minutes by Tractor 

https://www.instagram.com/10xtractor/



아쉽게도 시간이 늦었다. 오후 4시가 지나면서 직원들은 퇴근 준비에 바빠지기 시작했다. 반면 함께 한 뉴질랜드 관광객들은 이제 고생스러운 여정이 끝난다는 푸근한 미소가 보였다. 이미 서울에서 맛보고 경험한 텐 미니츠 바이 트랙터의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다만, 낡고 오래된 트랙터가 있는 와이너리를 상상했는데, 세련미 넘치는 멋진 곳이었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테이스팅 룸과 식당에서 여유 있게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개인적으론 모닝턴 페닌슐라의 아이콘은 단연코 텐 미니츠 바이 트랙터가 아닐까 싶다. 뉴질랜드 일행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5종의 시음 와인 중에 뭘 추천하겠냐고 묻길래, 당연히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권했다. 그들의 힘든 여정에 마지막 단비가 되었길. 

모닝턴 페닌슐라는 서늘한 해양성 기후 지역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각광받는 지역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라이징 스타가 된 것은 단순하다. 포도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라고 한다. 5곳의 와이너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혁신을 추구했다. 기존의 것을 더욱 잘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프리미엄 시장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전략과,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다른 것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앞에 지속적으로 결과물을 제시하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비즈니스에서의 혁신도 다르지 않다. 결국은 사람들이 좋아할 매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할 수 없다. 브랜드가 그 답을 제시해야 한다.  브랜드는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지향점, 가능성, 열정이 녹아 들어 있어야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좋은 와인은 시간이 걸리고, 좋은 포도나무 마찬가지며, 좋은 토양과 테루아 역시 시간의 결과다. 와인 산업의 라이징 스타가 지속하길 기원하며, 동시에 기존의 스타들로부터 새로운 혁신이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이러한 사람들과 동일한 시간대에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투어를 마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관성을 극복하는 것과 차이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삶의 여정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후원이나 지원을 받아서 다녀온 여행이 아니다. 호주 와인이나 모닝턴 페닌슐라 와인을 프로모션하는 글도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기임을 밝힌다. 

와인 애호가들과 와인산업 종사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멜버른행 항공권 알람이 떴다.

모두 건강한 설 명절 맞으시기 바란다.

2024년 2월 8일

오주석의 더블유 모먼츠 (W moments) 는 와인으로 만나는 경험을 담습니다.

출처 : 소믈리에타임즈(https://www.sommeliertimes.com)